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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끝나지 않은 고통…그리고 간담회 현장의 목소리

by 정보남2025 2025.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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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끝나지 않은 고통…그리고 간담회 현장의 목소리

한국 사회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의 책임, 기업의 탐욕, 제도의 부재, 그리고 무고한 시민들의 고통이 얽힌 복합적인 사회적 재난이었다. 2011년 처음 그 실체가 드러난 이후 수많은 피해자가 삶을 잃거나 영구적인 피해를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사건 발생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런 가운데, 2025년 7월 말 국회와 환경부 주최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간담회’는 단순한 청문회가 아닌, 진정성과 공감을 기반으로 한 중요한 자리였다. 이 간담회에서는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오갔고, 정부와 기업의 책임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어졌다.

이 글에서는 이번 간담회의 주요 내용, 그 안에서 드러난 진실과 한계, 그리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비극을 기억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1. 간담회의 배경과 목적

2025년 7월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14주기’를 맞아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정부 관계자, 국회의원들이 함께하는 간담회를 열었다. 장소는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 이번 간담회의 주제는 단순히 피해 보상에 그치지 않고, ▲제도 개선 ▲책임 규명 ▲기업 사과 ▲재발 방지 시스템 구축까지 폭넓게 논의하는 것이었다.

간담회를 주최한 한 국회의원은 개회사에서 “가습기살균제는 단일 제품으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낳은 참사”라며 “더는 진상 규명과 보상 문제가 미뤄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2. 피해자들의 증언, 고통은 현재진행형

간담회의 중심은 피해자들의 ‘목소리’였다. 자녀를 잃은 부모, 폐 손상으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생존자, 생계와 일상을 잃은 가족들까지. 그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간은 그 어떤 보고서보다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한 피해자는 “아이를 씻기고, 방을 청결하게 유지하려고 사용한 가습기살균제가 우리 아이의 생명을 빼앗았다”며 오열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매일 산소호흡기를 차고 숨을 쉬며 버티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조사 중’, ‘예산 부족’이라는 말만 반복한다”며 분노를 토로했다.

또한 한 청년은 “어릴 때부터 제품을 썼고, 지금도 폐 기능이 30%밖에 되지 않는다. 직장을 다니기도 어렵고, 보험도 들 수 없다”며 사회적 낙인과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이들의 증언은 단순한 ‘피해 사례’가 아니라, 아직도 일상 속에서 계속되고 있는 비극의 연속임을 보여주는 현실이었다.


3. 정부와 환경부의 입장

환경부 관계자는 간담회에 참석해 그동안의 조치사항과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인정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8,000여 명이며, 이 중 사망자는 1,600명이 넘는다. 하지만 피해 신청자는 여전히 증가 추세에 있으며, 잠재적 피해자는 그 몇 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환경부는 다음과 같은 조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 피해자 추가 접수 연장 및 피해 판정 기준 개선
  • 특별법 개정안 추진
  • 가해 기업과의 민사조정 절차 지원
  • 피해자 전담 치료센터 확충

그러나 많은 피해자들은 “진척이 너무 느리다”, “여전히 책임 회피성 발언이 많다”고 비판하며, 실질적인 보상과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4. 기업의 책임,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사과

간담회에서 또 하나 중요한 주제는 ‘가해 기업의 책임’이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에는 옥시레킷벤키저, 애경, 이마트, SK케미칼, LG생활건강 등 다수의 기업이 연루돼 있다. 이들은 자사의 제품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알고도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옥시 측은 2016년 일부 임원에 대한 형사처벌과 함께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피해자들은 이를 “진정성이 없는 면피용 사과”라고 평가했다. 다른 기업들은 공식 입장 표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번 간담회에도 주요 가해 기업 측 인사는 참석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해 참석자들은 “피해자들을 대면할 용기도, 사과할 진심도 없는 것”이라며 강하게 규탄했다.


5. 정치권의 책임과 향후 입법 과제

정치권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피해자들은 “법이 없어서 보상을 못 받는 게 아니라, 의지가 없어서 못 받는 것”이라며 정치권의 무책임함을 꼬집었다. 실제로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은 수차례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여야 의원들은 “정쟁을 떠나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한 법 개정은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입을 모았지만, 이 역시 수년째 반복된 말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특히 피해자들은 다음과 같은 입법 과제를 요구했다:

  • 피해자에 대한 생애주기별 지원 보장
  • 제조사 책임 명시 및 형사처벌 강화
  • 치료비 전액 지원 및 장기추적조사 의무화
  • 피해자의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교육 및 캠페인 강화

6. 언론과 사회의 역할

이번 간담회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한 비판과 요청도 나왔다. 한 피해자는 “사건 초기에는 언론의 조명이 컸지만, 요즘은 조회수가 안 나오면 다루지 않는다”며 “우리의 고통이 잊히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단순한 과거 뉴스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사회적 사건이다. 언론이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많은 피해자들은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일부 유튜버들과 시민기자가 사건을 지속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7. 간담회 이후, 달라질 수 있을까?

이번 간담회는 단지 말로 끝나서는 안 된다. 참석자들은 입을 모아 “진정한 변화는 피해자 한 명 한 명의 일상이 회복되는 것”이라며, 제도 개선과 기업 사과, 정치적 결단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환경부는 간담회 직후 ‘피해자 지원 시스템 전면 재정비’와 ‘국가 차원의 피해자 기념관 설립’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로 실행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8. 기억해야 할 숫자들, 그리고 사람들

  • 공식 인정 피해자 수: 8,267명
  • 사망자 수: 1,642명
  • 가습기살균제 사용 가구 수: 약 100만 가구
  • 제품 판매 기간: 1994년~2011년

이 숫자들 뒤에는 이름이 있고, 가족이 있고, 잃어버린 시간들이 있다. 간담회 현장에서 한 피해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조사표의 번호가 아니라, 엄마로서, 아내로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다 상처받은 사람입니다. 제 이야기를 기억해주세요.”


9. 마무리: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한국 사회에 남긴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다. 기업의 이윤 추구가 인간 생명을 희생시킬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제도가 부재할 때 얼마나 많은 고통이 축적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번 간담회는 ‘과거를 잊지 말자’는 의미를 넘어서, ‘지금도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예의’였다.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입법과 제도 개선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추모이자,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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